[국민일보 2021-11-03]
다발성 골수종 3기로 항암 방사선 치료
척추 절단 수술로 걸음마부터 다시 배워
고통 통해 하나님과 깊은 교제 하게 돼
2006년 가을, 한 강연회에 초청돼 미국을 방문했다. 강연 준비로 긴장한 상태라 몸의 상태를 잘 몰랐다. 어느 날 미세한 허리 통증이 느껴졌다. 허리 통증은 한국에서도 종종 있었던 일이라 병원에 가지 않고 참았다.
그런데 통증은 갈수록 심해졌다. 도무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돼 병원에 입원했다. LA에 사는 딸이 급하게 병실로 달려왔다.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암이 많이 진전된 상태입니다. 다발성 골수종 3기입니다.”
나보다 더 놀란 건 딸 애설이었다. 의사는 나보고 “왜 그렇게 미련하게 혼자 참았느냐”고 말했다. 아플 때 병원에 가지 않았으니 병이 깊어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제가 나이가 많은데 수술할 수 있을까요.” “최선을 다해봐야죠. 마음 굳게 먹으셔야 합니다.”
다행히 의사 표정을 보니 곧 죽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아닌 듯했다. 그것만 해도 어디인가. 주님께서 의사를 통해 암을 알려주실 정도라면, 내가 당장은 죽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감사와 함께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
수술하고 치료하는 과정은 험난했다. 아이들과 남편도 나 못지않게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나는 시시때때로 고통을 참으면서도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 기도했다.
“주님 저를 위해 기도하고 있을 자녀들과 제 남편의 마음을 위로해 주시고 주님의 뜻대로 인도해 주십시오.”
다행히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한동안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척추 일부를 절단해 제대로 걷지 못했다. 애설이에게 걸음마를 가르쳤을 때처럼 이번엔 내가 애설이에게 걸음을 배워야 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법, 자동차에 타는 법 등 하나하나 배우면서 나는 또 한 번 주님께 감사했다.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했던 동작들을 다시 알게 해주시고 제 마음을 낮춰주시니 감사합니다.”
애설과 사위는 1년이 넘는 치료 기간 나를 성심성의껏 돌봐줬다. 미국에 사는 딸에게 잘해주지도 못했는데 병간호까지 받고 있으니 미안한 마음이 컸다. 애설은 매일 저녁 내 손을 잡고 병이 완쾌될 수 있도록 기도했다. 딸의 눈물 어린 기도를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다. 내가 빨리 회복될 수 있었던 것도 주님께서 가족들의 기도를 들어주셨기 때문이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 난 뒤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조용한 아침 시간에 여유를 갖고 걸으면서 기도를 하니, 하나님과 또 다른 깊이로 교제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산책을 하는데 내 안의 성령께서 이런 음성을 들려주셨다.
‘네게 이런 고통이 없었다면 나와 이렇게 친밀하게 대화할 수 있었겠니. 이렇게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지금보다 온유해질 수 있었겠느냐. 너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시련을 주었다. 네가 아파할 때 나 역시 십자가를 지며 걸었고 네가 고통 속에서 울 때 나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나는 수술 뒤 회복 과정에서 주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갖게 됐다. 내가 천국 보좌에 한 걸음씩 다가설수록 나를 조금 더 내려놓고 주님을 더 의지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을 끊임없이 찬양하길 원한다.
/ 정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