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2021-11-02]
매일 유치원과 파이숍 직접 쓸고 닦고
호미로 학교 화단 가꾸며 생긴 상처들
“원장님 손 통해 노동의 가치 배워요”
파이숍은 늘 분주하고 손님들의 목소리로 시끌시끌하다. 커피와 쿠키를 주문하는 소리, 친구들이 만나 대화를 나누는 소리 등, 방학을 제외하고 늘 열려 있는 이곳은 교인과 학생, 학부모들의 공동 쉼터이다.
하루는 어떤 분이 가게를 찾아와 내 손을 잡고서는 “사모님에게 교훈 한 가지를 배워 간다”고 말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달걀 껍질에 남아 있는 흰자를 손가락으로 긁어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그릇에 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저는 빵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사모님이 파이숍을 어떻게 운영하고 있나 궁금해서 찾아왔습니다. 가까이서 일하는 모습을 보니 파이를 정성 들여 만들고 있다는 게 느껴지더군요. 재료를 낭비하는 저와는 달리 사모님의 절약하는 모습은 큰 교훈이 됐습니다.”
나의 근검절약 정신은 시어머니에게서 배웠다. 티끌 모아 태산이란 말처럼 작은 것부터 절약하는 습관은 나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모든 직원이 공유하고 있다.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교훈 삼는 분이 있다니 낯 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사람은 손으로 일한 것에서부터 정직한 가르침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여자는 손이 예뻐야 한다고들 하지만 내 손은 매우 거칠고 성한 데가 없다. 매일 유치원과 파이 가게를 직접 청소하고 쓸고 닦는 일을 반복하면서 생겨난 영광의 상처이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나를 보면서 ‘손이 아름다운 여인’이라 말한다. 고생한 티가 역력한 내 손을 통해 노동의 가치를 알게 된다고 했다.
물론 책상 앞에 앉아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는 몸빼바지에 호미를 들고 학교 화단에서 일한다. 파이숍의 주방에서 막힌 배수구를 뚫을 때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일까. 나는 꿈에서 주님이 ‘너는 파이숍을 운영한다면서 손이 왜 그렇게 말끔한 거냐’ 라고 물을까 봐 늘 노심초사한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까지 목수로 일하셨고, 사도바울도 전도하면서 텐트 만드는 일을 거르지 않았다. 노동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방편에 그치지 않고 사람을 겸허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오랜 기간 함께 일한 교사 중 한 사람은 내 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원장님 손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노동하는 손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습니다. 오히려 그런 손을 보면 ‘고생 많이 한 손, 불쌍한 손’이란 생각에 안쓰럽고 애처롭게 보곤 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원장님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을 사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원장님 나이가 됐을 때 저의 손가락 마디마디에도 노동의 미학이 나타나길 소망합니다.”
나는 지금도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는 줍지 않고는 못 견딘다. 길을 걷다가도 모퉁이에 잡초가 보이면 그 풀을 당장 뽑아내야 마음이 편하다. 약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설령 뛰는 한이 있어도 꼭 해야 하는 일들이다. 나는 그 거친 손으로 기도하고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하루도 쉬지 않고 바쁜 내 손이 너무나 고맙다.
/ 정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