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 2008-09-10 00:00]
● “9월 위기설, 경제처방보다 화합의 리더십으로 극복해야”
■ 대통령과의 화해를 모색하기 위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시종일관 분위기가 좋았어요. 전·현직 대통령 간의 갈등은 언론이 부풀린 것 같아요.
“소속된 단체나 지역의 이익에 따라 첨예하게 나뉘는 국론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시급한 과제입니다.”
김장환 목사(극동방송 사장)가 정부 및 사회 각계 인사들에게 던지는 ‘아젠다’이다. 그는 지난 3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 극동방송 사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가 서로 이해하기보다는 사사건건 충돌만 일으킨다. 국가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화합의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현재 지역적으로 ‘영남과 호남’, 정치적으로 ‘좌와 우’, 경제적으로 ‘노와 사’ 등으로 나뉘어 갈등을 벌이고 있다. 최근에는 기독교와 불교 간의 갈등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이같은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더 큰 대한민국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최근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원달러 환율 급등, 주가 폭락 등으로 불안심리가 가중되고 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9월 위기설’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갈등보다는 화합과 이해를 통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어느 사회건 갈등이 없을 수는 없어요.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죠. 그러나 최근 우리사회에 벌어지는 현상을 보면서 걱정을 많이 했어요. 대승적으로 이를 바로잡고, 분열된 국론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구심점 마련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영삼 정권 때는 종교 간의 갈등 적어
그는 자신이 성직자인 관계로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종교 간의 갈등을 예로 들었다. 경찰의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 차량 검문과 장경동 목사의 불교 폄하 발언을 계기로 양측의 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 시청 앞 광장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종교 편향 정책을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얼마 전 사석에서 장경동 목사를 만난 적이 있어요. 그런 취지가 아니었는데, 말이 많이 와전되었다고 하더군요. 김영삼 전 대통령 역시 교회 장로였어요. 당시 그는 종교 편향이라는 얘기를 듣지 않기 위해 군승(軍僧)을 대폭 늘린 적이 있었죠. 기독교인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역차별로 느껴질 수 있는 일이었어요. 최근 상황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시각을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상황도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이명박 정부가 의도적으로 편향적인 종교 정책을 펼쳤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언론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최근 한반도를 들끓게 했던 촛불집회에 대해 언론의 책임도 일정 부분 있다는 것이었다.
“보도가 공정하지 못했어요. 보수와 진보 언론의 논조가 극명하게 엇갈렸습니다. 국민들이 판단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어야 했는데…. 언론에서 ‘게임의 룰’을 지키지 못했어요. 우리 사회가 화합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가 70대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활발한 대외활동을 벌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 목사는 최근 전림선암 수술을 받고 1년 동안 치료를 받아 왔다. 몸 상태가 예년만 못하다고 그 스스로 토로한다. 현재는 극동방송의 경영에서도 물러나기 위해 차기 사장을 물색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화합을 위해 일정 부분 자신의 여력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알려지지 않은 비화 한 가지를 털어놓았다. 지난 1990년대 말 터진 이른바 ‘옷로비 사건’의 당사자였던 김태정 전 법무장관과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이 자신의 중재로 화해를 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발단은 이랬다.
“올 2월로 기억을 합니다. 어느 날 김태정 전 법무부 장관이 나를 찾아왔어요. 이 자리에서 김 전 장관이 최 전 회장에게 사과를 하고 싶다는 의도를 내비쳤어요. 자신 때문에 곤욕을 많이 치르고, 아직도 실형을 살고 있는 최 전 회장에 대한 일종의 사과였던 셈입니다.”
김 목사의 중재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결국 지난 2월 두 사람이 화해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김 목사는 당시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최순영 전 회장에게 의사를 타진했다. 처음에는 최 전 회장이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 목사의 설득으로 두 사람은 서울구치소에서 극적으로 조우를 하게 된 것이다.
“성직자 인생에서 가장 보람된 일을 했다고 생각한 것이 이때였습니다. 옷로비 사건으로 두 사람은 사이가 좋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책에 손을 얹어 기도하고 나중에 포옹까지 했어요.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서로 간에 이해가 부족했을 뿐입니다. 대화를 통해 상대를 이해한다면 갈등도 충분히 이겨나갈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는 전직 대통령과도 두루 인맥을 가지고 있다. 김영삼, 김대중 등 전직 대통령의 아들이 한때 비리 혐의로 수감되어 있을 때도 김 목사가 이들 부부 대신 기도를 겸한 면회를 다녀왔을 정도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백담사에 있을 때도 그가 수시로 찾았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적인 교분을 쌓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최순영-김태정 화해시킨 게 가장 큰 보람”
“현직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을 특사로 보낸다고 생각해보세요. 단순히 장관이나 국회의원을 보내는 것보다 효과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게 쉽지가 않아요. 정치적인 문제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그동안 갈등을 빚어왔던 전직 대통령들을 화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그러나 오해의 골이 깊어서 화해시키려고 해도 잘 안되더군요.”
일정 부분 성과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얼마 전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를 만나기 위해 봉하마을에 다녀왔다. 노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국가 기록물 유출 문제로 갈등을 빚었다. 이번에 노 전 대통령 부부를 만난 것도 두 사람을 화해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김우식 전 비서실장, 김진표 전 교육부총리와 함께 노 전 대통령 부부를 만난 적이 있어요. 후임 대통령에게 도움 주도록 요청했고, 노 전 대통령 부부도 긍정적인 의견을 보냈어요. 시종일관 분위기도 좋았어요. 실제로 만나보니 전·현직 대통령의 갈등은 언론에서 부풀려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 이형구 기자 (lhg0544@ermedi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