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2010-03-03 17:58]

“부시 전 美대통령 주강사로… 한국교회 제2 부흥 기대”

한국교회는 오는 6월 22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6·25 전쟁 60주년 평화기도회’를 개최한다. 이날 오후 5시부터 8시까지 열리는 기도회는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 목사 등이 주강사로 참여해 통일과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 부시 전 대통령 등의 초청에는 수원중앙침례교회 김장환(76) 원로목사의 역할이 컸다. 지난달 26일 극동방송에서 김 목사를 만났다. 그에게 6·25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대담 : 임한창 종교국장

– 한국교회는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성장이 크게 둔화됐습니다. 이번 집회가 한국교회의 부흥과 성숙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입니다. 오는 6월 22일 개최되는 평화 기도회는 어떻게 준비된 것입니까.

“얼마 전 부시 전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앞으로 뭘 할 거냐고 묻자 자유를 위해 일하겠다고 했습니다. 마침 6·25 60년을 맞는 올해 그를 초청해 자유에 대한 의견을 들으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6·25를 겪은 목회자들이 나와 경험담을 얘기하고 부시 전 대통령이 평화의 통일, 자유에 대해 마무리하면 좋을 것입니다. 그래서 대회 준비위원회가 발족됐고 김삼환 명성교회 목사를 대회장,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를 준비위원장으로 하고 고명진 수원중앙침례교회 목사를 총무로 해서 행사를 결정한 것입니다.”

– 미국의 전 대통령이 기도회 강사로 참여하는 것은 유례 없는 일입니다. 이번 기도회에 어떤 기대를 하십니까.

“기도회는 특정 이념을 나타내기보다는 순수해야 합니다. 기도회를 통해 북한 동포를 돕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랍니다. 이날 헌금은 모두 북한 돕기를 위해 사용할 것입니다. 올해는 6자 회담이나 남북 정상회담 등의 성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기도회는 이를 위한 영적인 예비 모임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라 기대합니다.”

– 1973년 빌리그레이엄 전도대회, 74년 엑스플로대회, 77년 민족복음화대회는 한국교회 부흥의 초석이 됐습니다. 그 이후에는 대형집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대형 집회가 될 이번 기도회에서는 어떤 점을 강조하게 됩니까.

“한국교회에 부흥과 성장의 동기를 부여할 것입니다. 특히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통일을 위해 기도해왔는데 이를 위한 구체적인 준비를 하자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다시 한번 한국이 성장 궤도로 올라설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교회 연합입니다. 해외 선교를 보더라도 선교사 파송을 제각각 하다보니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좀더 연합한다면 영향력이 상승할 것입니다. 이번 기도회가 연합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 6·25 당시 목사님은 어떤 상황이었나요. 미군 하우스보이에서 세계적인 목회자가 되기까지의 역전 인생을 사셨는데요.

“당시 저는 중학교 4학년으로 지금의 고등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피란갈 곳도 없던 가족은 경기도 수원에서 인민군 치하 3개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미군 전투기의 공격은 너무 무서웠고 인민군들의 활동 역시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9·28 서울 수복 이후 1·4 후퇴 때 수원 형무소 자리에 미군 24사단이 주둔했습니다. 초콜릿을 얻어먹기 위해 미군 부대에 갔던 게 하우스보이가 된 계기였습니다. 후퇴가 거듭되자 미군들이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극히 반대하면서 ‘죽으려면 가라’고 했는데 저는 ‘가라’는 소리만 듣고 미군 트럭을 타고 경북 경산까지 내려갔습니다.”

– 목사님을 공부시킨 은인 칼 파워스를 만난 것은 그때였습니까.

“거기서 파워스 상사를 만났습니다. 그가 미국 학교에 연락해 수속을 마쳐놓았고 51년 11월 말 부산서 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로 떠났습니다. 미군 보급품을 싣고 온 배였는데 배삯은 편도 408달러였고 한국 여학생 5명이 더 타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대학생이었고 부산으로 피란 왔다 미국으로 유학 가는 학생들이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니 미군 중위가 마중 나왔고 그 집에서 3주를 머물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밥존스로 갔습니다.”

– 거기서 고등학교를 다니시고 대학과 대학원까지 마치셨는데요. 원래 목회자를 꿈꾸셨나요?

“사실 저는 공부하면서 처음 예수를 믿었습니다. 철저한 불신자의 가정에서 자라서 어머니는 미국 갈 때 부적 두 장을 사서 옷에 꿰매줄 정도였습니다. 학교에서 처음으로 한글 성경을 받을 기회가 있었지요. ‘죽으면 죽으리라’의 저자 안이숙 여사와 김동명 목사 부부에게 선물로 성경을 받았습니다. 당시 그분들은 대학원생이었어요.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를 믿게 됐습니다. 생각해보면 하나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가족 전체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예수를 믿었고, 조카들은 선교사가 됐습니다.”

– 파워스 상사를 생각하면 참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어떤 분이었습니까.

“파워스 상사도 처음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심성이 착해서 저를 위해 만 8년간의 학비 일체를 지원했습니다. 나를 공부시키느라 결혼도 못하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제가 은혜를 갚는 길은 예수를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세례를 줄 기회가 있었는데 지난 79년 성지순례에 동행하면서였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 때 이스라엘에 도착해 성탄 당일 요단강 근처 웅덩이에서 침례를 주었습니다. 감격이 컸습니다. 올해 85세가 된 그는 아직 살아 있습니다.”

– 전쟁 통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이른바 ‘빌리의 귀향’을 통해 한국교회 부흥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목사님의 스토리는 언제 들어도 새롭습니다. 그런 점에서 목사님의 삶은 희망을 잃어버린 세대들에게 희망의 상징입니다.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전해 주십시오.

“요즘 자살 소식을 많이 듣습니다. 자살할 각오가 있다면 그 힘으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살은 보통 결단력으로는 어렵습니다. 그런 결단력으로 젊음을 불태운다면 어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현재의 삶이 고통스럽더라도 참고 자신의 잠재력을 하나님께 의지하면서 살아봅시다. 하나님은 더 큰 길을 예비하고 있다는 걸 기억합시다.”

◇ 누구인가 = 김장환 목사는 1934년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 17세에 도미, 밥존스중고등학교, 밥존스대학교 신학과,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미국 트리니티대학, 사우스웨스트침례대학 등지에서 명예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위튼대와 명지대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0년부터 2004년까지 수원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로 일했고 극동방송은 77년 1월부터 사장으로 일해왔다. 2000년부터 5년 간 세계 침례교 총회장을 지냈다. 지금은 극동방송 이사장, 수원중앙침례교회 원로목사, 한국십대선교회 명예이사장, 명지대학교 명예 이사장, 국민일보 이사로 활동 중이다.

/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