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2021-10-18]
돈 관리 항상 남편 몫… 필요할 때 받아 써
돈 없이 살다 보니 절약하는 법 배우게 돼
긴급 상황 땐 주께서 어떻게든 채워주셔
선교 초기에 남편의 수입은 미국 기독봉사회에서 보내주는 선교비에서 약간의 급여를 떼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외국에서 오는 선교비가 점차 줄어들었다. 외국에서 오는 선교비 총액은 줄지 않았지만 한국 화폐 가치가 높아져 원화로 환산할 때 금액이 줄어든 것이다.
남편은 1966년에 수원중앙침례교회 담임 목사로 부임했지만 사례비는 80년대부터 받기 시작했다. 극동방송 사장으로도 일하고 있지만 남편은 월급을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여보 나 생활비 좀 줘요.”
나는 돈이 필요할 때면 남편에게 조금씩 받아서 썼다. 신혼 초에는 시장에 갈 때마다 500원,1000원씩 받았고, 서울 갈 때는 그보다 조금 많게 받았다. 우리 부부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남편이 돈 관리를 해왔다.
“왜 돈을 나에게 주지 않는 거예요.”
이렇게 물으면, 남편은 “당신이 미국으로 도망갈까 봐”하고 우스갯소리로 답하곤 한다. 하지만 워낙 준비성이 철저한 데다 내가 한국 물정을 잘 모르니 자신이 관리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게 남편의 속내일 것이다.
하지만 돈이 필요할 때마다 얻어 쓰다 보니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남편이 해외에 나가면 돈이 없어서 시장에 못 갈 때도 있었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돈을 필요할 때 조금씩 타서 쓰는 아내는 대한민국에 나뿐일 거예요. 한 번에 좀 많이 줘 봐요. 그래야 다급할 때 쓸 거 아니에요.”
이렇게 항의를 하면 남편은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교회에 통장을 맡겨놨으니 꼭 필요하면 얼마씩 찾아 쓰도록 해요.”
그 말을 들은 즉시 부리나케 교회 사무실로 찾아가 돈을 달라고 했다. 직원은 내게 3만원을 건넸다. 평생 복권을 사 본 적 없지만 복권에 당첨된 사람의 기분이 아마 이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요즘이야 3만원은 애들 용돈 수준이지만, 나에겐 그야말로 일확천금에 버금가는 돈이었다.
한 번은 미국에서 어머니가 오셔서 직원에게 돈을 좀 더 찾아 달라고 했다.
“사모님 죄송한데 이달엔 3번 다 찾아가셨기 때문에 더 드릴 수가 없어요.”
알고 보니 남편은 그 직원에게 “한 달에 3번 이상은 주지 말라”고 당부해뒀다. 남편은 매달 10만원씩만 맡겨뒀는데 나는 2만원씩 3번, 즉 6만원만 찾아 쓴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는 매달 10만원을 다 찾아서 썼다. 조금씩 인상을 요구해 요즘은 100만원이 조금 넘는 돈을 받고 있다. 실은 전혀 부족하지 않다. 교인들이 이것저것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돈 없이 살다 보니 알뜰하게 사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한 달에 내가 쓰는 돈은 교통비, 미용실 비용, 교회 헌금이 전부다.
요즘은 물질에 메인 사람들이 많아서 사모들조차 돈에 예민하게 반응할 때가 있다. 살림을 이끄는 아내로서 목사인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조력자로서 물질적인 어려움을 고스란히 감내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돈이 많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긴급한 상황에서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주님이 채워주신다는 걸 믿기 때문이다.
/ 정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