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2021-10-04]


빌리와 헤어짐이 생각보다 길어지자
축구 응원 핑계 삼아 먼저 손 내밀어
다시 반지 교환하며 결혼까지 예감


김장환(왼쪽 첫 번째) 목사가 밥 존스 대학교 재학 시절 축구부 주장으로 활동하던 모습.

 

내게 설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헤어지는 게 좋겠다”고 말하는 빌리(김장환 목사)를 보면서 나는 큰 오해가 있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그 순간에는 이런저런 얘기를 해봐야 변명밖엔 안 될 것 같았다. 조용히 빌리의 반지를 돌려줬다. 빌리가 감정적으로 동요된 상태이고 나중에 화가 풀릴 것이라 생각해 일단 위기 상황을 넘겨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순전히 내 착각이었다. 빌리는 나와 만나지 않기로 이미 결심한 것 같았다. 방학이 되고 내가 미시간에 가 있는 동안에도 빌리는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나 또한 빌리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거의 넉 달 동안 연락이 끊겼다. 4년 동안 사귀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서로 자존심 때문에 그랬던 듯 싶다. 개학하면 빌리가 자연스럽게 화해하자며 찾아오리라 생각했지만 나만의 착각이었다.

11월 마지막 주에 추수감사절을 기념하는 축구 대회가 열렸다. 나는 올해를 넘기면 이대로 헤어지게 될 거라 생각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그를 찾아갔다. 축구부 주장인 빌리를 응원하면서 자연스럽게 화해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운동장에서 몸을 풀고 있는 빌리에게 다가갔다. 빌리 또한 나를 보고 놀란 눈치였는데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오늘 이길 자신 있죠.”

“물론.”

단답형인 빌리가 야속했지만 나는 마음에 담아뒀던 말을 전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이면 목적을 꼭 달성하길 바래요.”

“고마워.”

어색하면서도 무미건조한 대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경기는 시작됐고 나는 응원석에서 빌리 팀을 응원했다. 결과는 빌리 팀의 승리. 하지만 경기가 끝난 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빌리를 다시 만날 수 없었다. 나는 기숙사로 돌아와 빌리를 기다렸다. 예상대로 빌리는 저녁 무렵 나를 찾아왔다.

“우리 다시 사귈래요.”

“우리가 언제 헤어졌어.”

빌리의 말에 나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마음을 알아보려고 반지를 빼서 준 건데 너도 반지를 돌려줘 네 마음이 변했다고 생각했어. 개학하고 나서 네가 그 남학생과 아무런 사이가 아니란 걸 알았지만 자존심 때문에 다시 찾아가지 못했어. 낮에 나를 먼저 찾아와 줘서 고마워. 우리 다신 헤어지지 말자.”

빌리는 반지를 다시 내밀며 속마음을 털어놨다. 나는 “헤어지지 말자”라는 빌리의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그 순간 앞으로 우리가 결혼하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빌리는 1958년 5월에 대학을 졸업했다. 나는 남은 과목을 이수하느라 그보다 3개월 늦은 8월에 졸업했다. 내가 졸업 전 빌리에게 “이제 프러포즈 할 때도 되지 않았나요”라고 묻자 “날짜를 잡아 놨다”고 대답해 깜짝 놀랐다. 빌리도 오래 전부터 나와 결혼할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 정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