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2021-08-13]
“자유인은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유를 뺏길 위험이 있거나 자유가 없는 사람에게 그 자유를 지키고 찾아주는 것입니다. 한국인들이 자유를 누리는 데 작은 도움이 됐다면 그것만으로도 자긍심을 느낍니다.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우리는 기꺼이 참전할 겁니다.”
한국전쟁 때 수류탄에 오른쪽 팔과 다리를 잃은 윌리엄 빌 웨버(96) 미 육군 예비역 대령의 말이다. 71년 전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들을 위해 군화 끈을 조인 젊은 청년들이 있었다. 22개국 참전용사들이다. 웨버 대령을 비롯한 미군 병사들의 평균 나이는 고작 만 20세였다. 청춘을 바쳐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 미군 3만3695명이 전사했고, 9만2000여명이 부상당했다.
이들의 희생과 헌신에 보답하고자 미국 워싱턴DC 내셔널 몰 서쪽에 있는 한국전 참전용사기념공원에서는 ‘추모의 벽’ 건립 공사가 한창이다. 2022년 6월 완공을 목표로 세워지는 ‘추모의 벽’에는 전사자 4만3769명(미군 3만6595명, 카투사 7174명)의 이름과 참전국 수, 부상자 수가 새겨진다.
역사의 이야기로 길이 남을 ‘추모의 벽’
한국전 참전용사기념공원은 1995년 세워졌다. 미국 정부와 참전용사, 국내 기업이 뜻을 모아 조성된 이 기념공원은 연간 400만명 이상이 찾는 곳이다.
이곳에는 한국전에 참전한 미국 군인 19명이 판초를 입고 총과 무전기 등을 휴대한 채 전투대형으로 행군하는 장면이 재현된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병사들의 우측에는 약 49m 길이의 검은색 화강암 벽면이 있다. 그 위에는 2500명의 참전용사들의 얼굴이 부식 기법으로 새겨져있지만, 정작 그들의 이름은 기록돼 있지 않다. 2014년 미국 한국전참전용사추모재단(KWVMF)과 교민들이 기념공원 내 전사·실종자와 카투사 이름을 새겨 넣는 ‘추모의 벽’ 법안을 미 의회에 공동발의 한 이유다.
2016년 9월 미 상·하원은 ‘추모의 벽’ 건립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같은 해 11월 한국 국회에서도 건립 지원 촉구 결의안이 통과됐다. 기념공원 내 ‘기억의 연못’을 중심으로 세워지는 ‘추모의 벽’은 높이 1m, 둘레 50m의 원형 화강암벽으로 설치된다. 이 벽면에 참전용사들의 명단이 새겨진다.
지난 5월 미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도 ‘추모의 벽’ 착공식 현장을 찾아 의미를 더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참전용사들의 헌신과 희생 덕분에 대한민국은 자유와 평화를 지킬 수 있었고 오늘의 번영을 이룰 수 있었다”며 “영웅들의 숭고한 희생을 결코 잊을 수 없으며 낯선 땅에서 오직 애국심과 인류애로 자유와 평화의 길을 열었던 한 병사의 이름이 ‘추모의 벽’에 위대한 역사의 이야기로 길이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웨버 대령은 “한국전쟁은 미국 역사에서 잊히고 있다. 전사자 이름을 새기는 것은 희생에 대한 실체를 부여한다”면서 “참전용사들의 나이가 90대 초중반이다. 살아생전에 추모의 벽이 완공되는 것을 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추모의벽’ 건립 위한 특별 생방송
‘추모의 벽’ 건립 예산은 2420만 달러(약 279억원)다. 미 상·하원이 만장일치로 법안은 통과시켰지만, 건립 비용은 미연방정부 예산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명시해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지난해 한국 정부는 ‘추모의 벽’의 조속한 건립을 위해 예산의 97%가 넘는 2360만 달러(약 272억원)를 지원했다. 나머지 비용은 국민의 자발적 모금으로 채워야 한다.
‘추모의 벽’ 건립을 위해 모금운동을 독려해오고 있는 재미교포 박선근 한국전 참전용사기념재단 이사는 대한민국 국민의 마음이 모여서 완성돼야 의미가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와 평화를 위해 젊은 나이에 목숨 바쳐 싸워준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대한민국 국민 10만명이 필요합니다 . 전사자 한 명의 이름을 새기는데 1만원이 소요됩니다. 국민 한 사람당 1만원씩만 기부해 주면 됩니다. 우리의 작은 정성이 모여서 역사적인 기념비가 완성될 줄 믿습니다.”
극동방송도 ‘추모의 벽’ 건립 모금을 위해 오는 17일 화요일 오전 7시부터 8시 30분까지 ‘그 희생과 사랑을 영원히 기억하며 감사합니다’라는 주제로 특별 생방송을 진행한다.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는 “하나님께서 이 낮은 땅에 우리를 구하러 오셨던 것처럼, 참전용사들은 알지도 못하는 동양의 작은 나라를 위해 먼 타국까지 와서 목숨을 바쳤다. 그 사랑에 우리는 빚진 자들”이라며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담아 참전용사 이름을 새기는 ‘추모의 벽’ 건립 기금 모금에 적극 동참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모아진 기부금은 전액 한국전 참전용사기념재단에 전달된다.
/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