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2018-02-26 00:00]
김장환 목사가 기억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
“두 빌리가 이룬 작품입니다.” 1973년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전도집회에서 김장환(극동방송 이사장) 목사가 통역을 맡았죠. 김 목사의 영어 이름이 ‘빌리(Billy)’입니다. 둘이 한 몸처럼 설교하는 모습을 보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전한 말입니다. 실제로 김 목사는 그레이엄 목사의 설교를 잘 전달하기 위해 표정, 움직임, 어조, 스피드를 부지런히 연습했다고 합니다.
지난 22일 서울 극동방송에서 만난 김 목사는 그레이엄 목사에게 고마운 게 많다고 했습니다. “집회 때 악한 왕이었던 아합에 대해 설교하려고 하셨어요. 당시 정부가 오해하지 않을까 싶어 목사님에게 말씀을 드렸더니 소경 바디매오로 내용을 바꾸시더라고요. 가난했던 우리 국민에게 힘을 주는 메시지였습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내준 캐딜락 승용차를 보고 그레이엄 목사는 “큰 차를 타고 다닐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이에 대한 일화도 공개했습니다. “한국의 목회자들이 대통령을 전도하려고 수고를 많이 하던 때였죠. 혹시라도 대통령의 호의를 거부해 목회자들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아질까 걱정됐죠. 그렇게 되면 전도의 길도 막힐 것이고요. 그레이엄 목사님에게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이해하고 차를 받아주셨습니다.” 큰 빌리는 무명의 작은 빌리가 전한 조언조차 허투루 듣지 않는 참 겸손한 분이었습니다.
집회 통역 이후 김 목사는 모교인 밥존스신학대로부터 졸업생 명부에서 제명당했습니다. 보수적인 밥존스신학대의 신앙노선에 맞지 않는 그레이엄 목사 집회에서 통역을 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상심이 컸을 김 목사에게 한 통의 메일이 도착합니다. ‘나로 인해 제명처분을 당하게 해 미안하네. 그러나 빌리 자네가 통역을 잘해줘 그날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했다네.’
2년 전 미국 카네기홀에서 열린 극동방송어린이합창단 공연에 밥존스신학대 총장 부부가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4월 제명당한 모교에서 어린이합창단이 공연하며 김 목사와 밥존스신학대는 서로 화해했습니다. 큰 빌리는 훗날 작은 빌리를 크게 쓰시려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물 같은 분이었습니다.
/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 사진 =강민석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