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고의 복음전도사 그레이엄 목사 부인 옆에 영면
생전 자신의 죽음에 대해 ‘천국으로 이주하는 것’이라고 했던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지상에 마지막으로 남긴 묘비에는 꼭 들어가야 할 문구가 있었다. ‘Preacher of the Gospel of the Lord Jesus Christ(주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전도자).’ 평소 그의 바람이 담긴 것이다. 소나무로 짠 관 위에는 고인이 전도 활동을 했던 루이지애나 주립 교도소의 수감자들이 만든 작은 십자가가 돋을새김돼 있었다.
100세를 일기로 타계한 그레이엄 목사 장례식이 2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의 빌리 그레이엄 도서관 밖에 설치된 2만8000평방피트(약 2600m²) 크기의 흰색 천막에서 진행됐다. 1949년 그레이엄 목사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천막을 치고 열었던 부흥 집회를 기억하기 위함이었다. 20세기 최고의 복음전도자로 불려온 고인은 이날 도서관 옆 추도정원의 부인 루스 그레이엄 묘 옆에 영면했다.
이날 장례식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 내외와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벤 카슨 주택개발장관 등 정계 인사 등 2000여 명의 조문객이 찾았다. 빌 클린턴과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않았으나 지난주 초 그레이엄 목사의 유가족을 따로 찾아 조의를 표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살아있을 때처럼 그레이엄은 마지막 인사를 나누려는 수천 명의 대규모 군중을 모이게 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복음주의 계열의 유명 목사인 릭 워런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기독교인이었다. 가장 위대한 것은 목회생활 동안 어떠한 스캔들도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장례식은 정치색을 배제한 순수한 추도행사로 진행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별도의 추도사를 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장례식 후 고인을 ‘특별한 사람’이라고 칭하며 “평화롭게 잠드소서”라는 트윗을 띄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4년 전인 2014년 생일 축하연 때 그레이엄 목사를 만난 인연이 있다.
지난달 28일 그레이엄 목사의 유해는 미 국회의사당에 7시간 동안 안치돼 조문객을 받았다. 종교 지도자의 유해를 미 의사당에서 안치한 채 추모식을 거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CNN 방송은 고인의 복음주의 전도활동이 ‘십자군운동’으로 명명됐던 것에 빗대어 이날 장례식을 “20세기 최고의 복음전도사로 불린 빌리 그레이엄의 마지막 십자군운동”이라고 칭했다.
아들 프랭클린 목사와 딸 루스의 회고는 평범하고 따뜻한 아버지 그레이엄의 모습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프랭클린 목사는 추도사에서 “세상은 빌리 그레이엄이라는 목사를 TV 혹은 스타디움에서 봤고, 우리는 집에서 그를 봤지만 언제 어디서나 한결같았던 사람”이라며 “며칠 전 아버지는 예수를 따라 하늘로 가셨다”고 말했다. 루스는 두 번째 남편과의 결혼생활 파탄 뒤를 회고하며 “아버지는 집에 돌아온 걸 환영한다며 나를 감싸 안았다. 거기에는 어떠한 책망도 없고 조건 없는 사랑만 있었다”고 했다.
이날 장례식에서는 극동방송 이사장인 김장환 목사가 외국인 목회자를 대표해 추도사를 낭독했다. 김 목사는 “목사님 설교를 통해 구원을 받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과 마음을 모아 이 말을 전해 드린다”라며 “목사님,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잠언 11장 30절)는 구절을 인용하며 “빌리 그레이엄은 일생 동안 그렇게 살았다”고 추모했다. 100만 명 이상이 모였던 서울 여의도 행사와 관련해 과거 김종필 전 총리가 “전무후무한 청중이나 그 수가 중요한 게 아니다. 빌리 그레이엄의 설교를 통해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변화하고, 마음에 각인됐다는 게 진정한 의미다”라고 했다고 전했다.
고인의 청력과 시력이 극도로 나빠졌던 마지막 만남도 회고했다. 가족이 “한국에서 제일 좋아하는 목사가 왔다고 전하니 그레이엄은 ‘장난치지 말라’고 했다. 나중에 나를 확인하더니 ‘김 목사, 한국에서 집회 한 번 더 하자’고 했다.”
/ 김갑식 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