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방송 운영위원 1500여명이 한자리에 모인 수련회가 지난 5일 강원도 원주 오크밸리에서 열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극동방송 제공

“빰빠빰 빰빠 빰빰~” 흥겨운 전국 노래자랑 오프닝 음악에 맞춰 14명의 공연자가 무대에 올라왔다. 하양 파랑 노랑 가발을 쓰고 검은 선글라스에 흰 장갑을 낀 이들은 대구 극동방송 운영위원으로 구성된 ‘미녀원정대’팀.

“전국에서 모였네 반가운 얼굴, 기도와 사랑 나누며 은혜 안에 함께 하네.”

우스꽝스러운 복장, 재미난 몸짓. 객석에서 박장대소가 터져나왔다. 지난 5일 강원도 원주 오크밸리에서 극동방송 전국 13개 지사 34개 운영위원회에 소속된 1540명의 운영위원이 모였다. 이들은 각 지역에서 극동방송을 알리고 방송 선교 후원회원을 모집하는 역할을 한다.

극동방송 운영위원회는 1980년 9월 재정적 어려움으로 방송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을 때 기도와 후원으로 돕기 위해 시작됐다. 시골 교회까지 달려가 극동방송을 알리는 모세혈관이자, 순수 복음 라디오 방송이 지금까지 달려오도록 힘을 주는 심장과 같은 이들이다. 김장환 이사장은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늘까지 살아 70주년을 맞았다”면서 “전국의 운영위원이 한자리에 모여 오늘 수련회를 하고 기도를 하고 더 열심히 북한에 중국에 일본과 러시아에 복음방송을 전할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이 이들에게 함께 하길 빈다”고 말했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운영위원 수련회이지만 누구도 쭈뼛거리지 않았다. 표정과 몸짓에선 손님으로 초대돼 온 것이 아니라 극동방송의 가족이자 함께 뛰는 선교사라는 자부심과 소속감이 가득했다. 수련회도 그저 오는 것이 아니라 1500여명 모두가 최선을 다해 준비했음을 장기자랑 대회에서 알 수 있었다. “오늘 공연을 위해 모일 때마다 노래하고 춤추고 기도하면서 준비했다”는 이들은 노래, 옷, 춤과 표정까지 튀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포항 운영위원들은 금빛 반짝이 드레스를 입고 왔다. 전남 동부 운영위원회에서 온 형제 장로팀이 색소폰을 불다 “삑~삑~” 하며 ‘삑사리’를 내자 격려의 박수가 쏟아졌다.

마이클 잭슨 복장을 한 이가 춤을 추고 코로 피리를 불며 미니 뮤지컬을 연출한 광주팀도 환호를 받았다. 창원 ‘청대브라더스’가 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를 트로트풍으로 부르자 객석의 운영위원들도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춤을 추었다. 북한을 향해 전파를 보내는 제주 극동방송 운영위원 ‘제주 악단’ 팀은 영화 ‘신의 악단’을 패러디해 북한에서 방송을 듣는 광경을 재현해 감동을 주었다. 잔칫집같이 떠들썩한 분위기에 기자까지 흥이 났다.

개회 예배에서 원주중부교회 김미열 목사는 “극동방송은 세상의 많은 라디오 방송국 중 하나가 아니라 영혼을 울리는 은혜의 나팔로 생명을 살리는 능력의 방송”이라며 “운영위원들이 보여준 작은 믿음의 헌신이 큰 열매를 맺게 될 것을 믿는다”고 설교했다. 저녁 시간엔 김진표 전 국회의장이 특강을 했다. 그는 한국 사회가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보여준 헌신과 기도가 나라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돼 왔다며 복음의 가치가 한국 사회를 새롭게 하는 힘이라고 역설했다. 부흥회 시간에는 지구촌교회 조봉희 선교목사가 운영위원들의 기도와 후원이 극동방송 사역을 움직이는 숨은 동력이라고 말했다.

캄보디아 극동방송 후원을 위해 호떡을 구운 안순모 박영숙 집사 부부를 김장환(왼쪽) 이사장이 격려하는 장면. 극동방송 제공

수련회가 열린 오크밸리 컨벤션홀 앞마당에는 호떡 트럭도 등장했다. 원주에서 온 안순모 박영숙 집사 부부는 장사를 하루 쉬고 참가자에게 호떡을 나눠줬다. 호떡을 먹은 이들은 저마다 지갑을 열어 캄보디아 극동방송을 위해 헌금했다.

극동방송은 복음전파 7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 4월과 5월에는 각각 광주와 대구에서 영호남 전도대회와 미스바 기도회를 개최했다. 대표 프로그램인 ‘좋은 아침입니다’에서는 전파 선교사의 육성 간증을 전하는 이벤트도 열었다. 70년의 역사가 남긴 사진과 캘리그래피 전국 순회전시회도 진행 중이다. 10월에는 방송 청취자와 운영위원, 전파선교사들을 위한 홈커밍데이도 예정돼 있다.

극동방송은 2차 세계대전의 산물이다. 태평양 전쟁에서 돌아간 미군 병사 중에서 아시아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낀 이들이 있었다. 45년 중국 상하이에 최초로 극동방송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고 필리핀을 거쳐 전 세계 41개 국가에서 149개 언어로 방송하는 선교기관이 됐다.

한국에서는 56년 12월 23일 인천 해안가 학익동 588번지에서 한국 최초의 해외 송출 라디오로 시작했다. 방송국 앞 갯벌에 세워진 안테나 높이가 133m였는데, 철탑 위에 은괴가 있다는 소문이 나서 밤중에 기어오르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67년 서울 상수동으로 이전했고, 2013년 신사옥을 지었다.

수련회 이튿날 김 이사장은 성찬식을 집례하며 운영위원들에게 자신은 죽고 예수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기를 당부했다. 폐회 예배에서 미국 애틀랜타 벧엘교회 이혜진 목사는 “극동방송 모든 사역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며 “인간의 자랑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만이 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주=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