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와 임직원은 지난 21일 미국 버지니아 주 브리스톨에 위치한 컴벌랜드 스퀘어 파크에서 6·25전쟁 참전용사였던 칼 파워스 상사를 기리는 기념비 제막식을 가졌다. 파워스 상사는 김장환 목사의 ‘인생역전’을 이끈 인물로 김 목사의 가족과 극동방송 운영위원 및 임직원들 함께해 의미를 더했다.
제막식에는 브리스톨 지역에 거주하는 한국전 참전용사인 바비 그리핀을 비롯해 로이 F. 캐슬, 엔진 S. 헐 등 90세가 넘는 고령의 참전 용사들이 함께 자리를 빛냈다. 제막식의 축사는 버지니아 주의 상원의원인 이스라엘 오퀸이 전했다.
김장환 목사는 “우리가 머지않아 천국에 가고 이 땅에 없어진다 해도 이 기념비는 주님 오실 때까지 남아 있을 것”이라며 “점점 참전용사들이 이 땅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이 기념비를 통해 우리나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와 기꺼이 싸워준 우리의 참전용사들이 계속 기억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파워스 상사는 1950년 6·25 한국전쟁을 돕기 위해 한국에 왔다. 1951년 경상북도 경산의 미군 캠프에서 ‘하우스보이’로 허드렛일을 하던 소년 김장환을 만났다. 그의 성실함을 눈여겨본 그는 그해 11월 12일 김 목사를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파워스 상사는 부자가 아니었다. 미국 아팔레치아 산맥의 한 탄광촌에서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가난 때문에 한국전쟁 참전을 지원했다. 미국으로 돌아와서도 정작 본인은 사립대학 입학을 포기하고 독신으로 살며 소년 김장환을 명문 사립인 밥 존스 고등학교와 대학교, 대학원까지 무려 8년 동안 학비를 대줬다. 미션스쿨인 밥 존스 고등학교에서 김장환은 신앙과 믿음을 갖게 됐다. 그 뒤 신앙이 없던 파워스 상사도 김장환의 전도로 크리스천이 됐다.
1979년 성탄절, 파워스 상사와 함께 떠난 이스라엘 성지순례 길에서 김 목사는 그에게 세례를 베풀기도 했다. 김 목사의 간증이나 집회, 각종 모임에서는 파워스 상사 얘기를 듣는 게 어렵지 않을 정도다. 심지어 2000년 김 목사는 제19대 침례교세계연맹 총회장에 취임하면서도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파워스 상사였다고 고백할 정도다. 그만큼 김 목사 인생에 있어서 파워스 상사는 헌신과 사랑의 표본으로 자리매김해 있다.
김 목사는 2010년부터 칼 파워스 상사와 김 목사 자신 이름의 영문 첫 이니셜인 ‘P’와 ‘K’를 딴 PK장학재단을 설립했다. 경제 사정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면서 파워스 상사가 실천해온 헌신과 사랑의 사역을 대물림하고 있다.
파워스 상사는 2013년 9월 21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