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2021-10-25]


청소 일하며 어렵게 사는 한 자매 찾아와
딸이 섬으로 팔려가게 생겼다며 하소연
10년 마음고생 하다 퇴직금 받고서 갚아


1998년 트루디 사모가 50번째 생일을 맞아 수원중앙침례교회 성도들이 마련한 축하 파티에서 남편 김장환 목사와 함께 케이크 촛불을 끄고 있다.

남편이 세계침례교연맹 총회장에 당선된 뒤 유명해지자 주변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이것을 분별하는 것도 남편과 나의 숙제였다.

사모인 나는 그런 부탁에서 자유로웠으면 좋겠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한번은 병원 청소 일을 하면서 어렵게 사는 분이 나를 찾아와 “돈을 갚지 못해 딸이 섬으로 팔려 가게 생겼다”며 하소연했다.

“사모님, 딱 100만원만 있으면 제 딸을 살릴 수 있어요. 무턱대고 애를 데려가서는 ‘돈을 갚지 않으면 인신매매로 넘겨버리겠다’고 하는데 제가 가진 돈이 없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저에게 돈을 빌려주시면 꼭 갚겠습니다.”

지금도 100만원은 큰돈이지만 당시에도 웬만한 월급쟁이 한 달 봉급이었다.

‘주님, 이 자매님의 사정을 도울 수 있는 물질을 저에게 허락해 주세요.’

나는 자매를 위로한 뒤 “일주일 뒤에 다시 찾아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딱히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서럽게 우는 자매를 보니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마음이 아파서 도와주고 싶었다.

새벽마다 그 자매를 생각하면서 기도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며칠 뒤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님이 내게 “생일을 축하한다”며 100만원을 주시는 게 아닌가. 정말 주님은 완벽한 분이라며 혼자 감탄했다.

이튿날 나는 그 자매를 만나 돈을 건넸다. 그는 나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더니 “사모님이 우리 딸을 살렸다”면서 연신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런데 내게 돈을 받아간 뒤부터 자매는 나를 피해 다녔다. 돈을 갚으라고 독촉한 것도 아니고 그저 딸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서 말이라도 붙이려고 하면 “급한 일이 있다”며 자리를 피했다. 나는 ‘혹시 거짓말을 한 것일까’하고 생각했지만, 기도로 받은 돈이기에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10여년이 지난 어느 가을 저녁, 집에서 식사하고 있는데 교회 직원이 “어떤 분이 사모님을 찾아왔다”고 알려왔다. 사무실에 갔더니 나이 드신 아주머니가 달려와 나를 껴안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10년이 넘었지만 나는 그 아주머니가 내게 100만원을 빌려 간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사모님, 제가 그때 100만원을 빌려 갔는데 형편이 안 돼 못 갚았어요. 그때 빌려주신 돈 덕분에 딸을 찾아올 수 있었어요. 딸은 지금 결혼해서 잘살고 있지만, 저는 사모님께 빌린 돈이 늘 마음에 걸렸어요. 그래서 이번에 퇴직금을 받아서 그 돈을 갚으려고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10년도 지난 일인데 그동안 빌린 돈 때문에 마음고생 했을 아주머니가 안쓰러웠다. 늦게라도 돈을 들고 찾아온 그 마음이 고마웠다. 나는 아주머니와 손을 맞잡고 오랫동안 살아온 얘기를 나눴다. 한 시간이 넘게 대화를 나누고 돌아가는 길에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사모님이 저를 미워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이렇게 맞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모님을 보면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신다면 저런 모습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이제부터 교회에 나갈 거예요.”

/ 정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