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03-06-29 17:42]
최근 서울 마포구 상수동 극동방송 본사에서 만난 김장환 목사(69·극동방송 사장)는 특이한 라디오 하나를 들고 나왔다.
그는 라디오 옆에 달린 손잡이를 돌리더니 라디오 전원을 켰다. 극동방송 DJ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 라디오는 건전지가 필요없이 손으로 돌려 전원을 공급하는 것이다. 북한에 라디오를 보내도 건전지가 없어 듣기 어렵다는 얘기를 듣고 개발한 제품이다.
김 목사가 26년간 사장을 맡고 있는 극동방송은 올해 개국 30주년을 맞았다. 극동방송은 1973년 제주의 제주극동방송(구아세아방송)으로 시작해 77년 서울에서 전파를 내보냈으며 북한 중국 러시아 몽골 지역에 복음을 전파해왔다. 현재 대전 울산 창원 목포 포항 제주 등 전국 네트워크를 갖고 2개의 AM과 8개의 FM 채널을 통해 하루 22시간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어로 방송한다. 극동방송은 순수 헌금으로만 운영한다. 한 사람이 2, 3개 일을 맡는 등 효율성을 높인 덕분에 흑자 운영을 하고 있다.
“애초에는 우리 방송을 공산권에서 듣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1979년 중국과 미국이 수교를 맺고 개방이 된 뒤에 중국의 조선족 등 청취자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1990년 한 조선족 여성이 김 목사를 찾아 왔다. 그는 허리에 찬 전대를 풀어 2만2100달러를 김 목사 앞에 내놓았다. 깜짝 놀란 김 목사에게 그는 문화혁명으로 선교사들이 추방된 이후 새벽마다 극동방송을 들으며 예배를 드린 신도들이 수시로 모은 돈이라고 설명했다.
“외화 밀반출로 체포될 위험을 무릅쓰고 가져온 그 여성의 믿음이 감격스러워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김 목사는 그동안 라디오 보내기와 탈북자 돕기 등 많은 대북(對北) 선교사업을 해왔다. 그는 “서로 교류가 완전히 단절됐을 때 풍선 안에 라디오를 넣어 북한으로 띄워 보내기도 했다”며 “때가 되면 극동방송의 대북 선교 사업과정에서 일어난 비밀스러운 일들을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침례교세계연맹총회장으로 침례교가 주류인 미국 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 방미 전과 후 두차례에 걸쳐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노 대통령 방미 준비를 위해 미국에 간 고위 공직자에게 들은 얘기입니다. 당시 미국의 고위 공직자가 대뜸 ‘미군에 의해 죽은 두 여중생의 이름을 아느냐’고 물어 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서해교전 때 죽은 병사 6명의 이름은 아느냐’고 묻기에 정신이 아찔했다는 겁니다. 결국 대답을 못했죠. 나중에 국내에 돌아와 노 대통령에게 전사자의 이름은 알고 가는 게 좋겠다고 전했다고 하더군요.”
당시 미국 백악관과 의회의 관심은 노무현 대통령이 도대체 어떤 사람이냐는 것이었다.
“저는 ‘노 대통령이 경험이 없고 백지 상태에 있는 사람이므로 여러분들이 잘 대해주면 좋은 프린트가 나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노 대통령 방미 전엔 국회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장 임명을 강행하는 것 등을 보고 우려하더니 방미 후엔 상당히 좋은 인상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미국 정부가 탈북자와 북한의 인권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부시 대통령은 아침 기도 때 북한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
“우리도 탈북자를 위해 몽골 정착촌을 만드는 방안과 우크라이나에 망명시키는 것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