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극동방송 개국 50주년 기념예배

제주 극동방송 개국 50주년 기념예배

“이곳(북한)에서도 극동방송 한경은 안아언사(아나운서)님 사랑의 말씀을 잘 들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많은 생각 중에 위험을 무릅쓰고 편지 씁니다. 한 가지 부탁드릴 것은 간증과 례화(예화)를 (방송으로) 보내주십시오. 간증과 례화는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있습니다. 비록 (북한에) 방송을 듣는 사람이 없는 것 같을지라도 은밀한 가운데서 청취하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저희들을 위해 많이 기도해 주십시오. 통일의 그 날 감격적인 상봉을 위해 열심히 기도합시다.”

한 북한 성도가 극동방송이 전달한 라디오로 방송을 청취하고 있다. 극동방송 제공

1996년 제주 극동방송에는 북한 성도에게서 온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손글씨로 빼곡히 적은 두 장의 누런 편지지에는 당국에 발각되면 받게 될 처벌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도 방송을 통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나누며 감사의 뜻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1996년 북한의 한 극동방송 청취자가 보내온 편지. 극동방송 제공

고 하용조 온누리교회 목사가 직접 제주 극동방송을 찾아와 전달한 이 편지를 통해 북한에도 지하교회 성도가 실제 존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또 그들이 몰래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신앙생활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한국교회에 알려준 계기가 됐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제주 극동방송’

73년 아세아방송으로 시작된 제주 극동방송은 미국 데이비드 윌킨슨 선교사와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89) 목사의 희생과 헌신으로 세워졌다. 57년 일본 오키나와에 송신소를 세우고 공산권에 복음을 전해 온 미국의 선교기관 극동방송(FEBC)은 72년 오키나와의 반환을 앞두고 일본 정부의 철수 요청으로 송신소를 제주도로 옮기기로 결정한다. 제주도를 선택한 이유는 염분이 있는 바다 근처에 송출 안테나를 세우면 전파가 강해지는 데다 오키나와보다 중국 상하이에 더 가까워진다는 입지 때문이었다.

일본 FEBC 책임자였던 윌킨슨 선교사는 미국 밥존스고등학교 동창이었던 김 목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김 목사는 “제주 땅에 방송국을 세우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하나님께서는 예비하신 사람들을 통해 가능하도록 인도하셨다”며 “고 윤치영 당시 민주공화당 의장(덕수교회 장로)의 도움으로 방송국 허가를 받아낼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아세아방송은 72년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에 3만6000여평 토지를 구입해 송신소를 건립했다. 이런 가운데 윌킨슨 선교사가 과로에 심장마비로 별세하며 김 목사가 방송국 설립의 책임을 맡게 됐다. 아세아방송 제주송신소는 설립 후 AM 1566㎑로 (국내 민방 최대출력 250㎾ 송출)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로 방송을 편성해 동북아 18억명의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북방선교 전문 방송으로 자리했다.

2001년 10월 1일 아세아방송은 제주 극동방송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북방지역 선교방송으로 힘찬 걸음을 내디뎠다. 방송국에는 주님을 영접했거나 신앙생활에 큰 힘을 얻고 있다는 은혜의 간증이 끊이지 않았다. 2011년 23년 된 낡은 송신기 교체를 위한 모금 생방송을 실시할 당시 북한 지하교회의 성도가 방송을 듣고 신앙 노트와 함께 10여만원에 해당하는 중국 돈 500위안을 헌금으로 보내오기도 했다.

북한 성도의 믿음과 참혹한 현실이 낱낱이 기록돼있는 신앙노트에는 “북한 땅에 있는 우리들을 위해 깨끗한 방송을 들을 수 있게 도와달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성도들의 후원으로 송신기를 교체한 제주 극동방송은 이후 더 선명한 방송을 송출할 수 있게 됐다.


개국 50주년 기념예배

제주 극동방송(채평기 지사장)은 지난 9일 50년간 동북아 방송 선교를 이끌어오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제주시 연동과 애월읍에서 각각 ‘조찬 감사예배’와 ‘개국 50주년 기념 예배’를 드렸다.

해군해병 연합국악대와 제주 극동방송 어린이 합창단의 축하 공연으로 시작된 기념 감사예배에서는 73년 설립 당시 하나님께 감사와 기쁨의 찬양을 올려드렸던 제주영락교회 연합 성가대가 찬양곡 ‘은혜’를 부르며 그날의 영광을 재연했다.

심상철 제주영락교회 목사는 ‘오십주년’(고전 15:10~11)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며 “50년 전 제주 극동방송에서 시작된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 우리나라와 장차 북녘땅에서 역사를 이룰 그날을 하나님이 속히 허락해 주실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가 9일 제주 극동방송 설립에 기여해 준 고 윤치영 민주공화당 의장(덕수교회 장로) 가족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는 모습. 극동방송 제공

김장환 목사는 이날 50년 전 제주 극동방송 설립 기반에 큰 도움을 준 고 윤치영 전 민주공화당 의장의 아들 윤인선씨 내외에게 감사를 표하고 감사패를 전달했다.

기념 예배에는 케이코 요시자키(81) 일본 FEBC 전 지사장이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케이코 전 지사장은 “일본에는 종교 방송사를 세우는 것이 금지돼있어 제주 극동방송에서 전파를 쏘아 올리는 것이 유일하게 복음방송을 들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라며 “50년간 제주 극동방송을 통해 일본에 복음을 전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말했다.

세계 4대 라디오 방송 중 하나인 FEBC는 50국 149개 방송사가 128개 언어로 40억 가청 인구를 향해 복음을 전하고 있다. 한국 극동방송은 AM 2개, FM 13개, 중계소 9개로 복음을 전하며 땅끝 선교를 감당하고 있다. 한기붕 극동방송 사장은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다. 앞으로도 동북아시아를 선교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효진 기자